턱은 삼정의 하정, 만년의 자리
전통 관상학에서 턱은 삼정 가운데 하정(下停)에 해당하여, 대략 쉰 이후 말년의 운과 아랫사람·자손과의 인연, 그리고 살아온 삶이 쌓인 결과를 읽는 자리로 본다. 오악으로는 북악(北嶽)에 견주니, 얼굴 아래에서 전체를 든든히 떠받치는 봉우리인 셈이지. 턱이 두툼하고 둥글게 받쳐주면 말년이 넉넉하고 따르는 이가 많다고 여겼네.
턱은 삶의 뿌리이자 그릇에 해당한다고 하여, 이곳이 든든하면 노년에 안정과 편안함을 누린다고 보았다. 반대로 턱이 지나치게 뾰족하거나 빈약하면 말년에 다소 분주하거나 홀로 서는 기운으로 풀이하나, 이는 성향의 결일 뿐 표정과 마음가짐으로 그 기색은 얼마든지 달라진다고 옛 어른들은 이르셨다.
턱 모양으로 보는 말년의 결
둥글고 두툼한 턱
둥글고 살집이 알맞게 오른 턱은 관상에서 가장 복스럽게 여긴다. 마음이 넉넉하고 포용력이 있어 사람이 따르며, 말년까지 안정과 복록이 이어지는 상으로 전통 관상학에서는 본다. 이런 턱은 삶의 뿌리가 든든하다 하여, 노년에 편안한 뜰을 가꾸는 상으로 풀이하지.
뾰족하거나 갈라진 턱
턱이 뾰족한 사람은 감성이 섬세하고 예민한 기질로 본다. 다소 분주할 수 있으나 그만큼 자기 세계가 뚜렷하다는 결로도 읽히지. 턱 가운데가 살짝 갈라진 이른바 갈라진 턱은 개성이 강하고 매력이 있는 상으로 여기며, 의지가 굳은 성정으로 풀이한다고 전통 관상학에서는 이야기한다.
광대와 턱의 어우러짐
광대뼈는 오악 가운데 동악(東嶽)과 서악(西嶽)에 해당하여, 그 사람의 활동력과 의지, 사람을 이끄는 힘을 나타낸다고 본다. 광대가 알맞게 발달하여 코와 턱을 감싸듯 어우러지면 기운이 한곳으로 모여 든든한 상으로 여겼네. 다만 광대만 홀로 튀거나 살 없이 뼈만 도드라지면 기운이 흩어진 것으로 풀이하니, 광대와 턱은 늘 함께 살펴야 한다.
특히 턱과 양 광대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아래를 든든히 받치는 형세를 전통 관상학에서는 좋게 보았다. 이는 곧 삶의 후반을 지탱하는 뿌리와 기둥이 튼튼하다는 뜻이지. 얼굴의 위쪽 이마가 하늘의 뜰이라면, 아래쪽 광대와 턱은 그 뜰을 받치는 땅에 해당하니, 위아래가 고루 균형을 이룰 때 격이 높은 상이라 하겠네.
지각과 노복궁으로 보는 아랫사람 복
턱 끝을 지각(地閣)이라 하여 말년의 안정과 거처, 부동산의 복을 읽는 자리로 본다. 지각이 둥글고 도톰하게 앞으로 살짝 나오면 노년에 머물 곳이 든든하고 삶이 안정적이라고 전통 관상학에서는 여겼네. 또한 턱과 볼 아래쪽을 노복궁(奴僕宮)이라 하여, 곁에서 나를 따르고 돕는 아랫사람·후배와의 인연을 살피는 자리로 삼는다.
노복궁이 도톰하고 넉넉하면 사람의 도움을 받는 복이 있고, 따르는 이가 많다고 풀이한다. 반대로 이곳이 빈약하면 스스로 일을 챙겨야 하는 기운으로 보았으나, 결국 사람의 복은 평소 베푼 정에서 돌아온다고 옛 어른들은 이르셨다. 관상은 타고난 뿌리를 비추는 거울일 뿐, 만년의 뜰을 가꾸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이지. 내 턱이 어떤 말년의 복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직접 살펴보는 것도 좋은 재미이니라.
볼살과 하관이 만드는 인상
턱과 광대를 이어주는 볼의 살집, 이른바 시골(腮骨) 언저리의 볼살도 말년의 복을 읽는 데 함께 살핀다. 전통 관상학에서는 귀 아래에서 턱으로 이어지는 볼이 도톰하게 받쳐주면 만년에 재물과 사람이 곁에 머무는 든든한 상으로 여겼네. 옆에서 보았을 때 이 볼살이 은근히 드러나는 것을 후덕한 상으로 좋게 보았지. 볼이 홀쭉하게 꺼지면 말년에 다소 분주한 기운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얼굴 아래쪽 전체를 아우르는 하관(下觀)이 넉넉하면 삶의 뿌리가 든든하여 실행력과 뚝심이 있는 성정으로 본다. 다만 하관이 지나치게 발달하여 위쪽 이마와 균형이 무너지면 기운이 아래로만 쏠린 것으로 여겼으니, 여기서도 위아래의 어우러짐이 관건이다. 결국 좋은 하정은 어느 한 부위의 두툼함이 아니라 턱·볼·광대가 서로를 감싸며 이루는 조화에서 완성된다고 하겠네.
한 가지 더 새겨둘 것은, 턱은 세월과 마음가짐에 따라 그 인상이 가장 크게 무르익는 자리라는 점이다. 젊을 때 다소 여위었던 턱도 삶이 안정되고 마음이 넉넉해지면 살이 오르고 기색이 후덕해진다고 옛 어른들은 이르셨네. 그러니 지금의 턱 하나로 말년을 못 박기보다,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곧 좋은 하정을 가꾸는 길이라 하겠지. 관상은 어디까지나 그 여정을 비추는 즐거운 거울일 따름이니라.